작성일 : 14-08-04 01:01
왜 선교해야 하는가
 글쓴이 : 황성태 선교사
조회 : 1,488  

'왜 선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심각하게 던져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질문을 던지고 여기에 대한 바른 답을 찾을 때 선교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선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중심에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세계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우리가 선교해야만 하는 이유를 몇가지로 제시하려고 한다.

1. 긴박성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다. 신실하신 그 분이 약속하시기를 예수님의 재림은 이루어질 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은 날마다 다가오고 있다. 재림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내 교회 우선 하다가 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뒤로 미루다가 예수님 오시면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예수님 오시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선교는 후에 할 일이 아니라 지금 할 일이다.

2.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명령인 것은 행 1:8, 마 28:18-20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창 12:3, 사 49:6의 말씀과 연결되어진다. 선교 명령은 주님의 유언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반드시 행해져야 할 의무다. 그러나 이 명령은 의무로서만 아니라 사랑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함으로 해야 한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한다.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영접하는 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구원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선교가 필요한 것이다. 이 명령은 교회의 사명이요 성령께서 요구하는 사명이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겠으며 듣지 않고서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3. 교회와 선교의 관계 때문이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다. 방주로써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선교를 책임져야 한다. 교회는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불어낸다는 뜻이다. 불러낸다는 것은 곧 선교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선교와 교회는 일치되어 있다. 선교는 교회의 사역이고, 교회는 선교적인 교회다. 기독교가 처음부터 선교적인 공동체가 아니었다면 교회는 이미 끝이 났을 것이다. 초대 교회도 선교하는 교회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보냈셨다.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이 중요하다. 희어져 추수하게 된 곳에 우리를 보내신다. 우리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선교를 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는 이루어진다.

4.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명감 때문이다.
파숫꾼이 전달하지 않으므로 인해서 생기는 사고에 대해서는 그 책임이 전적으로 파숫꾼에게 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 했다. 전해야 할 사람이 전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것이요, 나중에 주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때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 중에 아직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이 있다. 해외에는 복음을 접하지 못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더욱 더 많이 있다. 이들은 모두 굶주린 영혼들이요 복음을 갈망하는 영혼들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없이 어찌 들을 수 있으며, 듣지 않고 어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수가 있겠는가?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세계 선교가 필요하다. 국내에도 아직 복음을 접하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으니 국내에 우선을 두자고 하는 말도 일리는 있으나 하나님의 영혼은 국내외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서구는 영적으로 부요한 상태에 있다. 교회도 많이 있고, 교회 관련 연구 기관및 단체, 시설도 많이 있다. 방송국, 신문사, 학교, 서적등 각 분야에 없는 곳이 없다. 그러나 제 3세계는 빈곤에 빠져 있다. 교회는 작고 미약하며 주로 사회의 하층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빈곤한 상태이다. 게다가 교회에는 여자들이 훨씬 많다. 이 말은 십일조가 적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빈곤하다. 전임 사역자를 지원할 능력이 없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성경 한 권을 구하기도 힘든 상항에 놓여 있다. 한 근로자가 신약 성경을 사기 위해서 이틀 혹은 사흘치의 임금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5.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망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인 교회다. 그들은 자체적 부흥을 이룩하였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다. 성령이 충만하여 내부적 기쁨도 있었다. 구제도 있었다. 전도도 있었다. 사도행전 2장 40절 이하를 보면 주위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였었다. 그 결과로 인하여 믿는 사람들의 수가 날마다 증가하는 교회였었다. 그러나 그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선교 명령은 수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강제로 나뉘어짐을 당하게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생겨서 그들은 디아스포라로 흩어지게 되었다. 중세 유럽의 교회가 한참 부흥할 즈음에 한 일은 교회를 아름답게 짓는 것이었다. 그들은 외적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려고만 하였지 복음을 들고 세계로 흩어질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지금 그들에게 남은 것이란 돌로 지은 아름다운 교회일뿐이다. 그 안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없다.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 오는 관광객은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핍박을 당할 뿐만 아니라 그 교회 자체가 존재하기 어려워진다.

6. 선교하는 교회는 부흥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장하게 되는 것은 선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 성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썩는다. 웅덩이의 물은 썩을 뿐이다. 옹달샘은 물을 흘려 내보낼 때에야 썩지 않는다.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싱싱한 물을 솟아나게 한다. 마찬가지로 자기 지엽적 생각을 가지고 세계 선교에 동참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의 성장을 이룰 수 없으나 세계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는 더욱 더 큰 부흥을 이룰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실 때 은혜의 통로(PIPE)로 만드셨지 은혜의 저장소(TANK)로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복음을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도록 은혜의 통로로 만드신 것이지 은혜를 저장하고 혼자만 누리도록 탱크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하는 교회는 주는 교회요, 주는 교회는 사명을 다하는 교회요, 사명을 다하는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7. 선교는 2000년대 기독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복음 전도는 전 세계적 과업이다. 기독교 국가의 인구는 증가되지 않는 반면에 비 기독교 국가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인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 25년전 33%이던 것이 지금은 30% 정도다. 특히 회교권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남아 있다. 아직 복음이 미치지 못한 족속들은 12,000여 부족에 달한다고 한다. 유럽도 점차적으로 비기독교화 되어져 가고 있다. 유럽은 이제 선교사를 받아야 할 입장이다. 3,000여 명의 선교사가 파송되어 있지만 유럽의 교회는 아직도 부흥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기독교의 흐름은 지금 한국을 향하고 있다. 선교 100년 역사에 전 인구의 25%라고 하는 경이적 숫자로 증가하게 하는 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교의 사명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의 흐름은 그 주체가 계속 서쪽으로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흐름과 같이 하여 선교의 중심지도 흐르고 있다. 처음에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일어나던 것이 대서양으로 넘어갔고 그 후에 다시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태평양을 중심으로 흘렀다. 지금은 그것이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 2천년대 선교의 주역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이다. Otto Dibeliusa는 세계 선교 운동사를 네 단계로 구분한다. 첫째는 유대인들에 의해 복음이 유대 문화권에서 헬라 문화권으로 전파된 시기이며, 둘째로 복음이 헬라 문화권에서 로마의 정치 사회로 널리 퍼진 시기요, 셋째는 로마 제국에서 복음이 북유럽(게르만 민족) 쪽으로 번진 시기요, 넷째는 서구로부터 복음이 동쪽으로 전파되어 마침내 극동까지 이른 시기라고 했다. 이 극동의 중심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 교회는 선교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 한국에서도 장자 교단의 장자 교회에서 그 책임이 막중함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로는 한국 교회는 힘 있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숫자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급성장해 있다. 인적 자원도 풍부하다. 이들이 힘을 합하면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둘째는 다른 국가들이
한국 교회에 호의적이란 사실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식민지화 하면서 복음을 들고 들어갔다. 그 결과로 부작용이 심하다. 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해방신학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과거에 강한 힘을 가지고 지배하던 나라들은 선교사를 파송해도 거부감을 갖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부담 없는 나라로 통한다. 셋째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여러 나라로 흩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의 흩어짐 같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각 지역으로 흩어져 있다. 공산권, 회교권 속에도 들어가 있다. 한국의 중심이 서울이라 할 때, 또한 서울의 중심이 강남을 주축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강남의 중심에 있는 우리 교회의 사명 또한 작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 과업은 영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에 선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결론을 맺고자 한다. 선교를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의 종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자들의 촛대를 옮겨버린다고 하셨다. 초창기에 선교를 제대로 하지 않는 예루살렘 교회를 하나님은 흩어버리셨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들만 크려고 했던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 민족주의가 위험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기독교는 민족 중심의 종교가 아니다. 세계가 하나의 교구다. 그러므로 선교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수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차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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