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7-14 10:25
기독교 세계 선교사(J. Herbert Kane)
 글쓴이 : 황성태 선교사
조회 : 1,526  

 

기독교세계선교사

A Concise History of the Christian World Mission

 

By J. Herbert Kane

 

1

역사적 연구

 

I. 로마제국의 기독교

헬라문명은 B.C. 6-8세기경에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거주지를 건설한 후, 중해 세계의 상업의 주인으로 등장하였다. 헬라어는 문화와 상업에 사용되는 언어일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에 많은 도움을 가져다준 언어였다. 그것은 로마제국에서 건설한 도로를 통하여 여행하며 전도하기에 매우 용이했으며, 자치권을 부여하여 종교적으로 대단히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나 로마문화보다도 기독교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은 히브리 문화였다.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생각되어졌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권력의 보호를 받아왔다.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한 참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예배를 전달하였으며, 메시야가 오신다는 기대와 보편 언어인 헬라어로 된 성경을 전파하였다. 바울의 경우, 어디를 가든지 제일 먼저 유대인 공회를 찾아가서 유대인 동족과 개종자들을 만나고 멧세지를 전하였다.

사도행전에 보면, A.D.30년에 하나의 유대적 소수파로 시작한 것이 A.D.60에 이르러서는 세계종교로 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제자들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으나, 예루살렘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 였는지 예루살렘에서 계속해서 성전과 유대를 갖고 기도회와 예배에 참석하, 얼마되지 않아 그들의 사역은 예루살렘에만 400개 이상의 공회에 확산되었. 그 멧세지의 내용은 고난의 메시야, 회개의 촉구, 약속된 용서와 회복에 관한 것이었으며, 다분히 유대교적이었다. 그러나 A.D. 70년 예루살렘성이 함락하면서 교회는 현세적이기 보다는 영적이며, 지역적이기 보다는 우주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대로와 강을 따라 계속해서 확장되어 갔는데, 동쪽으로는 메케도냐,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 북쪽으로는 알마니아, 본도, 비두니아로 퍼져 나갔으며, 후에는 스페인, 아일렌드, 중국, 국에 까지 전파되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부터 급속한 확장을 보았고, 따라서 기독교는 왕실의 보호와 국가적인 재정지원까지 받으면서 4기까지 성장을 지속시켜 나갔다.

우리가 누룩의 비유(13:33)와 소금과 빛의 비유(5:13-16)에서 보았듯이 그리스도인은 소금으로서 이교도 사회에 스며들어가 부패를 방지하고 체제에 활력소를 불어 넣으며 새로운 힘과 맛을 첨가해야 함은 물론, 빛으로서 복음의 진리로 무지와 미신을 몰아 냄으로 이교도의 암흑을 밝혀 내야할 임무가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순전하고 포용력 있는 마음으로 자기들을 의식시키고 삶의 비밀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초기 기독교회의 특징은 사랑과 미덕이었다. 그리스도들은 주님의 사랑하라는교훈부터 실천하였고,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베풀어졌다. 또한 주님께서 무죄한 성품으로 죽으신 것과 같이 정결한 삶을 살아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 당시 로마인들에게 가장 심각한 죄가 있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와 부도덕이었. 이것은 에베소, 고린도까지 번져나갔으나,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사업운영에서나, 가정생활, 시민의 책임과 사회관계에서도 그리스도안의 생활을 영위하였.

64년 네로황제에 의한 제 1차 박해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도시미안에 의한 제 2차 박해 때로부터 시작하여 2시기 동안에는 안디옥교회와 서마나 교회의 감독이 순교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칼타고에서 순교당하였. 그러나 313년 콘스탄틴이 밀란 칙령을 발표함으로서 지속적인 평화가 찾아왔.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앞에서도 감사했으며, 그들의 순교의 피가 오늘날 교회의 씨가 된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콘스탄틴은 밀란 칙령에서 제국 내에 있는 모든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고, 디오클레시안때에 몰수 당했던 교회 재산을 다시 환수 하도록 명하였다. 이때에 유세비우스에 의한 교회사가 완성되었고, 교회연합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던 니케아 종교회의가 있었다. 콘스탄틴에 의한 기독교의 평화는 양적으로는 급성장을 가져 왔지만 선교에 대한 수고는 거의 필요치 않아도 되는 인식이 박히기 시작했다. 교권은 정치 세력과 결혼하여 영적인 면에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정권이 견고해지면서 감독은 교권뿐 아니라 법적 권한까지도 갖게 되었다.

  II. 유럽의 기독교화

6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아일랜드는 야만족들의 침공을 받지 }았기 때문에 교회는 빛을 발하였다. 아일랜드의 교회는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었는데, 패트릭 시대부터 거룩한 열심을 가지고 외국인들에 대한 복음화에 힘썼으며, 스코틀랜드의 픽트족, 영국의 앵글족과 색슨족, 네덜란드의 프리시안족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영국의 기독교의 기원은 모호한 상태이나 6세기가 되어서야 기독교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콜럼바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는 다수의 교회와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가 설립한 아이오나의 수도원에서는 회원을 크게 셋으로 나누었는데, 성경을 복습하고 영적인 일에 치중하는 시니어(Seniors), 일반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근로형제(Working Brethren), 교육을 받는 초신자인 쥬니어(Juniors)등이 었다. 이 수도원은 200여년간 존속하여 영국도서와 유럽 각국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콜럼바의 후계자 아이단과 교황 그레고리에 의해 파송된 어거스틴, 윌프리드에 의해 영국의 회심은 완성되었다. 이후 영국은 200동안 계속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열정을 보였다.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은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선교활동을 수행하였는데, 아일랜드의 윌리브로드가 네덜란드에서, 영국의 보니페이스가 독일에서, 안스카가 스칸디나비아에, 안스카의 제자인 림버트가 덴마크에서 각각 어려움을 무릎쓰고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설립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 나갔다. 노르웨이, 스웨, 불가리아, 러시아, 폴란드등의 국가에서는 선교사에 의한 개종보다는 왕에 의한 개종이 이루어 지기도 했다.

  III. 이슬람교와의 대면

기독교교회가 가장 심각한 위협에 봉착한 것은 7세기에 갑작스럽게 생성되어 확산된 이스람교의 세력이었다. 이스람교는 전투적이며 선교적인 종교였다. 632년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모하메드가 죽고 난 후 그의 추종자들은 아라비아의 전투적인 부족을 통일하여 정복과 회심의 선교를 실현하였다. 그들은 다메섹(635), 안디옥(636), 예루살렘(638), 가이샤라(640), 알렉산드리아(642), 페르샤 제국(650), 칼타고(697), 스페인(715) 등의 나라를 차례로 정복하였다. 이슬람교는이후 500년간의 정체기간을 지낸 후 13세기와 14세기에 오토만 터키족과 중앙 아시아의 몽고인들이 추종하게 되었고, 15세기에 오토만 터키족은 그리스와 발칸제, 콘스탄틴노플을 함락시켰다.

이슬람교도는 어느곳을 가든지 간에 피정복자들에게 코란경과 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였다고는 하나, 기독교인들은 비쟌틴 통치하에서 보다도 더큰 자유를 만끽하였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은 고전적인 헬라문학을 아랍어로 번역해 주거나, 새로운 통치자들에게 헬라문학을 분여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전파할 수 있는 자유는 없었다. 개종은 일방적인 것이어서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는 갈 수 있어도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할 수 는 없었는데, 만일 그러한 일이 있다면 개종한 이스람교인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북 아프리카에서도 이슬람교에 대한 포교는 급속하게 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양적인 부흥은 컷지만 영적인 면에서 나약했었기 때문이었고, 사실 권력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토착적으로 자리잡지 못하였고, 나라 고유의 언어로 된 성경이 존재치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사의 어두운 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1095년과 1272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십자군 원정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방교회측에서의 셀쥬크 터키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소망과, 로마 카톨릭 교회측에서의 콘스탄틴노플을 중심으로 한 비쟌틴제국을 지지하고 터키의 침공을 막고자 하는 열정, 로마측에서의 동방과 서방 교회의 분열을 치유하여 다시한번 기독교의 통합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십자군은 실패했다. 기독교회가 팔레스틴이라는 성격을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사실은 자신들의 신앙 자체를 거부한 것이었고, 십자군 원정대들의 극악성으로 이슬람교도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때의 70,000명이라는 엄청안 모슬렘교도를 학살한 사건은 오늘날에도 중동의 이슬람교도들의 마음속에 처절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IV. 로마 카톨릭 선교

유럽의 개신교회가 대륙내에서 세력을 견고케 하는 동안 로마 카톨릭교회는 세계의 비기독교 지역에 나아가 정복을 하였다. 로마 카톨릭의 선교발전은 포루투칼과 스페인 제국의 해외확대와 시대를 같이 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왕들은 해외 영역에 신앙을 전파하고 불신자들을 회심시키는 일을 책임졌다. 교회의 임명권은 시민당국에 의해 주여졌으며 그 경비는 나라가 부담하도록 하는 파트로나(Partonato)의 체제가 생겨났다. 초기에 가장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였던 이들나라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가 배출되었다.

유럽 외지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선교는 몽테콜비노의 죤(John of Monte Corvino)1294년 중국에 도착한 것에서부터 비롯되었고, 그는 북경에 교회를 설립하고 100,000명의 카톨릭 신자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1368년 명나라가 등장하면서 선교사들은 축출당하고 기독교는 소멸되고 말았다. 이후 마테오리치가 북경에 도착하여 250,000명의 개종자를 얻었으나 도미니크 교단 및 프란시스 교단에서는 예수회가 유교와 타협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에 봉착하였고, 1724년과 1736년에 기독교회에 대한 박해령으로 중국에서 다시한번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 일본에서는 프란시스 자비엘이 1540년 예수회의 선교사업을 상륙시켜, 혼란한 정치상황과 기독교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세기가 바뀌면서 50만을 능가하였다. 그러나 1614년 반기독교령이 발표되면서 해외선교사들은 축출되었고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면키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의 나라들과는 달리 필립핀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는데, 선교사들은 반야만적인 섬사람들에게 기독교를 포함하여 문화기술을 가르쳐 여자들의 노예상태를 해방시켜 주는 등 전인구의 85%의 신자를 보유하는 나라가 되었다.

  V. 개신교 유럽선교의 기원

개신교 선교가 카톨릭 보다 더딘 이유는 종교개혁자들의신학때문이었는데, 들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원 사도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보았으며,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었다고, 후세의 교회는 선교사를 보낼 권위도 책임도 없다고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신교의 상황은 생존의 문제에 시달려야 했으며, 루터교와 개혁파 사이의 상살 전쟁으로 인한 분열이 선교사업 수행에 장애가 되었다.

또한 카톨릭 국가들의 식민지 확보로 인해 그 방향이 넓었었던 것에 비해 개신교는 그 어느곳에서도 고립을 면키 어려웠다. 따라서 개신교 선교는 대륙에서 시작하였고, 1664년 져스티안 폰 벧츠는 교회의 선교적 책임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그 기틀을 다졌다. 이후 1648년 독일에서는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났으며, 덴마크 에서는 최초의 선교기구인 덴마크 할레 선교회가 생겨났고, 모라비안 선교회의 등장으로 실질적인 해외선교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 할레선교회와 모라비안 선교회가 18세기 전반에 걸쳐 선교무대의 중심부를 석권한 후 19세기에 와서 약 15개의 대륙적 선교회가 발족되었다. 요한 웨슬레는 죠지아 주에서 인디안들을 위한 선교사업을 하다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후, 회심의 역사를 통해 변화된 모습으로 40년간의 전도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그를 통하여 감리교회의 탄생과 종교적으로 파멸되어가던 영국을 건지고, 근대적 선교운둥의 기초를 놓았다.

  VI. 영국과 미국 개신교 선교의 기원

개신교 선교는 윌리암 케리에 의해 시작된다. 그는 "이교도의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관한 조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여 선교적 호소를 해 나갔으며, 선교사를 해외에 파견하기 위해 이교도 복음 선교를 위한 특별 침례교 연합회를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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