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비둘기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노아의 방주 안에는 온갖 들짐승들과 날 짐승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짐승들 중에는 까마귀와 비둘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까마귀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름답게 지저귀는 하얀 새였다.

여러 주 동안 계속되던 대홍수가 끝나자 노아는 바깥 사정이 무척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날 노아는 까마귀를 불러 바깥 동정을 살피고 오라고 명령했다. 노아의 명령을 받고 까마귀는 바깥 동정을 살피러 방주 밖으로 날아갔다. 방주 밖으로 나간 까마귀는 아주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방주 밖의 세상에는 사람과 짐승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었다. 까마귀는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며 상황을 살폈지만 가는 곳마다 동물과 사람의 시체밖에 없었다. 온종일 날아다니느라 피곤해진 까마귀는 잠시 땅에 내려앉았고 몹시 배고픔을 느꼈다.

그런데 까마귀가 내려앉은 그 자리에 말이 하나 죽어 있었따. 배가 몹시 고팠던 까마귀는 무심결에 죽은 말을 한 번 콕 쪼아 맛을 보았는데 너무 맛이 있었다. 결국 까마귀는 노아의 명령도 잊은 채 여기 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며 죽은 짐승의 살을 쪼아 먹었다.

한편 방주 안에서 까마귀가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노아는 초조해진 나머지 비둘기를 불러, 까마귀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바깥사정은 어떠한지 알아보고 오라고 명령했다.

노아의 명령을 받고 방주 밖으로 나간 비둘기는 방주 밖이 안전하다는 사실과 까마귀가 죽은 짐승들을 쪼아먹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노아에게 이 사실을 모두 일러바쳤다. 노아는 자기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비둘기를 칭찬했으며, 비둘기에게 순수함, 충성 그리고 자유의 상징이 되라고 축복했다.

그러나 몹시 화가 난 노아는 까마귀에게 “너는 지금부터 검은 모습으로 변해 영원히 죽은 짐승의 고기만 먹으며 목이 쉰 흉한 목소리로 지저귈 것이다.”라고 저주하였다. 그때부터 까마귀는 노아의 저주대로 검은 색으로 변했고 목소리는 흉측하게 변해 언제나 ‘까르륵! 까르륵!’하고 울었으며 썩은 짐승의 고기만을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필리핀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