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그리나와 요술나무

바닷속 물고기들은 또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애들아, 페리그리나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 바닷가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던데.”

그러나 물고기들은 페리그리나의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실은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아버지는 외동딸이 홀로 지내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자트라는 여자와 재혼을 하였는데, 그녀에게는 이미 두 딸, 푸카이와 키카이가 딸려 있었다. 그것 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이들 모두가 잔인하기 이를 데 없고 이기적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페리그리나의 아버지가 전처의 딸인 페리그리나를 사랑하는 것을 못견뎌하였다. 이것을 눈치채지 못한 아버지는 이제 페리그리나에게 친구가 생겨 그녀가 더 이상 외롭게 지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기뻐하였다. 그는 안심하고 사업차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여행을 떠난 어느날 오후, 계모와 두 딸은 이웃 마을에 쇼핑하러 가고 페리그리나는 남아서 저녁을 지어야만 하였다. “그들이 시장에서 생선 사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조금 후, 날이 어두워지고 계모와 두 딸이 쇼핑한 것들을 털썩 내려놓으면 법석을 떠는 소리가 났다.

“아이 배고파, 페리그리나야! 오늘 저녁 준비는 다 되었겠지?” 두 딸은 아우성을 쳤다. “밥은 지어놓았어요.” 페리그리나는 힘없이 대답하였다. “시장에서 뭘 좀 사왔어요? 저녁 찬거리가 없어서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자트가 소리를 지른다.

“뭐라고? 벌써 먹은 것이 떨어졌다고? 그럼 우리가 공기라도 먹으란 말이냐?” 이때 키카이가 나섰다. “생선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고? 엄마, 재더러 나가서 생선이라도 잡아오라 하세요. 배고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카카이의 말을 들은 계모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가서 생선이라도 잡아 오너라. 아주 큰 걸로 잡아와야 한다!”

페리그리나가 슬픈 얼굴로 바닷가에 나가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었다. 바닷가는 그녀가 평화로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수로 생선을 잡는담?” 그녀가 낙담해 있을 때, 갑자기 큰 물줄기가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나오는 것을 보았다.

빛이 솟아나오는 것을 보는 듯하였다. “‘아냐, 내 눈이 헛것을 보는 것이 틀림없어, 아마 달빛이라도 비친 게지.”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더 큰 파도가 솟구쳐 올라왔다. 그 뒤를 이어 어마어마한 찬란한 은빛 지느러미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페리그리나야, 페리그리나야, 왜 울고 있지?” 그녀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거대한 물고기였다.

“우리는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 해 보렴, 우리가 도와줄게.” 그 목소리는, 여행을 떠나고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인 양 그녀에게 들려왔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오늘 자녁 계모와 그녀의 두 딸을 위해 밥을 지어야 해요. 그런데 반찬거리가 없어서 생선을 잡아가야만 한답니다. 그러나 나는 고기를 낚을 줄을 몰라요. 내가 오늘 고기를 낚지 못하면 계모와 그 딸들이 나에게 매우 화를 낼 거예요. 그러니 난 어떡하지요?” 이에 그 은빛 물고기가 말했다.

“나를 잡으세요, 나를 잡아서 저녁을 지어요.” “안돼요, 어떻게 당신을 잡아 죽일 수 있단 말이예요. 난 할 수 없어요.” 다시 물고기가 설명하였다. “아무 말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나는 뜨거운 후라이판 위에서도 죽지 않아요.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꼐요. 아무 걱정 마세요.”

그날 저녁 페리그리나는 밥과 강낭콩 조금밖에는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찌 그 생선을 반찬으로 해서 밥을 먹을 수가 있었으리요.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계모와 두 딸은 실컷 배불리 먹고는 자기 위해 뿔뿔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된 페리그리나는 식탁에 남은 생선뼈를 애처로이 바라보았다. “이걸 버릴 수는 없지. 나를 위하여 생명을 버렸는데..” 그녀는 뼈들을 정성들여 정원에 묻어 주었다.

그날 저녁, 페리그리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나무를 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생선뼈를 묻었던 바로 그 자리에 자란 나무였다. 그 나무는 수많은 투명한 열매를 맺고 있었는데 마치 망고열매 같았다. 놀라운 것은 그 열매들 속에 금은보화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보석들이, 그지없이 아름다운 수 놓은 천들과, 뾰족 구두, 이브닝 드레스, 그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싼 물건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었다. 나무는 이런 투명한 망고 열매들로 휘어질 지경이었다.

페리그리나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날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곧 정원으로 나가보았다. 꿈은 사실이었다! 페리그리나는 조심스러이 과일들을 주워 모았다. 바로 그때였다.

“아하!” 하는 말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페리그리나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거기엔 계모가 서 있었다. “나의 정원에서 뭘 훔쳐가지?” 무섭게 소리친 계모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들어 과일을 뺏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녀는 돌로 변하고 말았따. 그의 어머니가 자기들 눈 앞에서 바로 석상으로 변해버리는 것을 본 푸카이와 키카이는 곧 페리그리나가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즉시 그녀에게 용서를 빌기위해 땅에 엎드렸다. 착한 페리그리나는 두 이복동생을 용서해 주고 신비한 과일을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안자트 계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몇 날 며칠 동안 석상으로 정원에 남아 있어야 했다.

달도 밝은 첫 대보름 비가 내릴 때에서야 세 딸은 정원에서 어렴풋이 사람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안자트 어머니였다! 그들은 그녀를 따뜻하게 맞이하여 잘 간호하였다. 그녀는 곧 회복되었다. 그후로 안자트 어머니는 잘못을 뉘우치고 계모와 딸들은 사이좋게 살게 되었다.

<이것이 필리핀이다 중에서>